매일성경 | 아가 6장 4-13절 | 남자 목자의 사랑과 교회
목차
아가 6:4-13
찬송가 561장 예수님의 사랑은
예수님과의 신비한 연합
여자 목자는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목자를 찾아 헤맸습니다. 헤매다가 만난 곳은 남자 목자의 동산이었습니다(6:2). 남자 목자는 자기 양 떼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은 고난을 동반합니다. 고난을 받을 때 우리 예수님께서 어디 계시는가 찾아 헤매기도 합니다. 그 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돌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고 예수님은 우리의 것입니다(6:3). 그 누구도 이 신비한 연합을 깰 수 없습니다. 이제 4절부터는 남자 목자의 노래입니다.
남자 목자의 사랑
4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5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6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8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9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10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11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12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13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남자 목자는 여자가 디르사 같이 어여쁘다고 합니다. 여기 디르사는 북 왕국 초기 수도였던 도시입니다. 만약 아가서가 분열 왕국 시대 때 지어졌다면 이런 표현은 없었을 것입니다. 디르사라는 이름의 뜻은 "기쁨, 아름다움"입니다. 이 도시는 평지로 아름다웠습니다. 또한 남자 목자는 여자 목자가 예루살렘 같이 곱다고 합니다. 예루살렘도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또한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합니다. 여자 목자의 아름다움은 도시나 군대에 비유되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자주 도시나 군대에 비유하시기 때문입니다. 여자 목자는 예수님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합니다.
심장 떨리는 사랑
남자 목자는 2절에서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라고 합니다. 이것을 새번역 성경은 "그대의 눈이 나를 사로잡으니 그대의 눈을 나에게서 돌려다오"라고 번역합니다. 눈이 너무 매혹적이어서 사랑을 주체할 수 없으니 빤히 쳐다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묘사는 젊은 남녀가 서로를 사랑하기 시작할 때 심장이 떨리는 순간을 표현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심장이 너무 떨리니까 그렇게 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우리 예수님과 교회와의 사랑이 이렇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교회를 향해서 심장 떨리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사랑으로 온 열정을 다하셔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랑과 선택
남자는 앞에서 묘사했던 것과 같은 묘사를 반복합니다(5절 하-7절; 4:1-3 참고). 여자의 외모에 대한 남자의 칭찬이 반복됩니다. 그만큼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에 대한 사랑은 독점적인 것입니다. 왕비가 육십 명이고 후궁이 팔십 명이고 시녀가 무수하지만 사랑은 오직 한 명입니다(8-9절). 이것이 사랑의 특징입니다.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 이유가 없이 독점적으로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선택을 그 안에 포함합니다. 선택이 없으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선택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복된 교회
남자 목자들은 여자 목자가 귀중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하면서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고 칭찬한다고 합니다(9절). 우리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복된 자라는 칭찬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복의 근원입니다. 우리 덕분에 세상에 복이 내려지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회는 하나님께서 복 주심을 세상에 나타내 보이고 그 복을 세상에 전하는 공동체입니다.
뚜렷한 교회
남자 목자는 여자 목자가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다고 합니다.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다고 합니다. 이 여자는 흐리고 어두운 사람이 아니고 밝고 뚜렷한 사람입니다. 어둠에 가려진 부분이 없고 해와 달처럼 빛나는 사람입니다. 깃발을 세운 군대처럼 어느 편인지,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확실한 사람입니다. 이 묘사는 교회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어둠이 아니고 빛입니다. 가려진 그늘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쳐다보고 확실히 아는 아침 해나 빛나는 달입니다. 깃발을 높이 세우고 우리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는 군대입니다.
에덴의 회복
남자 목자는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내려갔습니다(11절). 그가 보려고 한 것은 포도나무, 석류나무, 호도 나무들이었습니다. 이런 나무가 많은 동산을 거니는 남자 목자는 우리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을 거니시는 장면을 생각나게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에덴에 두시고 사람과 함께 거하시면서 지극한 기쁨과 복과 안식을 누리셨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죄로 파괴되었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없이하시고 그 사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마음이 그 백성을 향하고 있음
남자 목자는 부지중에 그 마음이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했다고 합니다(12절). 사람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고 있을 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이 따라갑니다. 그와 같은 일이 남자 목자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 수레는 백성을 순찰하기 위한 수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그 백성에게 향하고 계십니다.
춤과 구경
13절 상반절은 사람들의 합창입니다. 친구들은 술람미 여자에게 돌아와서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고 합창합니다. 친구들이 술람미 여자를 보고싶다고 하자 남자 목자는 "너희가 어찌하여 ... 여자를 보려느냐"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너희"는 남성 복수형입니다. 그러므로 이 표현은 남자 목자가 다른 남자들이 술람미 여자가 춤추는 것을 보려고 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표현입니다.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은 마하나임이라는 지명일 수도 있고 "두 군대 앞애세 춤 추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두 군대는 그 소속이 나뉘어진 군대입니다. 그 앞에서 춤을 춘다는 것은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마음이 이쪽 저쪽으로 나뉘는 것과 같은 상황일 수도 있고 명예롭지 못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교회는 때때로 넘어집니다.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두 군대 앞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갈팡질팡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께서는 교회를 책망하시고 붙드십니다. 또한 교회를 유혹하고 넘어지게 하는 세력을 제어하시고 책망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를 보존하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