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호세아 12장 1-14절 | 경제적으로 안정 되었을 때, 야곱의 행적에서 배우라

2024-12-01 07:00:27
#이스라엘#야곱#하나님#유다#호세아#에브라임#여로보암2세#경제적번영

목차


    호세아 12:1-14

    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호세아 11장과 12장 문맥

    호세아 11장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 사랑은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은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 아들을 돌보시듯이 이스라엘을 돌보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징계 끝에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최종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회복이었기 때문입니다. 

    11장 마지막 절(11:12)은 에브라임은 거짓으로 이스라엘은 속임수로 하나님을 에워쌌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다는 정함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짓과 속임수를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야곱에 대한 말씀으로 이어집니다(3-6절). 12장에서 야곱을 말씀하시는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과 야곱의 변화를 대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1   에브라임은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하여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에 보내도다
    2   여호와께서 유다와 논쟁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시며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시리라

    에브라임이 거짓을 행한 것(11:12)은 그들이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기름을 애굽으로 보낸 것으로 드러납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바람을 먹으며 동풍을 따라가서 종일토록 거짓과 포학을 더"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바람을 먹는다는 것은 헛된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바람을 아무리 먹어보아야 배부를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거짓"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동풍은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가장 거센 바람입니다. 동풍이 불면 모든 초목이 마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동풍을 따라간다는 말은 그들의 행동이 다른 이들을 해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포학"이라는 말과 연결됩니다. 앗수르와 계약을 맺고 애굽에 기름을 보내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세금을 무겁게 부과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포학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배부르게 하지 못함입니다. 즉 헛됨입니다. 왜냐하면 앗수르와 애굽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스라엘을 착취하고 압제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와도 논쟁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유다가 신실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정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11:12). 유다와 논쟁하셨다는 말(רִיב)은 법정에서의 다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도 이리저리 방황했습니다(11:12 רוּד). 하나님을 경외했던 히스기야 때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다가 그의 아들 아하스 때에는 앗수르를 의지하고 다시 요시야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렇게 왔다갔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유다에게도 책임을 물으신다고 하십니다. 

    에브라임과 유다가 다 포함된 이름이 바로 "야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그 행실대로 벌하신다고 하십니다. 그의 행위대로 그에게 보응하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야곱"이라고 하심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하나님을 속였기 때문입니다(11:12).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그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야곱", 즉 속이는 자였습니다. 이제 야곱 이야기가 이어집니다(3-6절). 야곱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와 야곱의 변화를 대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3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4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그를 만나셨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
    5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근원을 아십니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 발뒤꿈치를 잡았고" 이렇게 해서 그의 이름이 야곱이 되었습니다.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속이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은 그 이름에도 잘 나와있듯이 "속이는 자"였습니다(창 25:26). 야곱은 자기의 힘으로 에서의 장자 명분을 빼앗았습니다(창 26:27-34). 그리고 아버지 이삭을 속였습니다(창 27장). 그 결과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을 하면서 라반에게 수차례 속임을 당했습니다(창 29:21-30, 31:7).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보호하셨습니다(창 31:9). 야곱은 나중에 힘으로 하나님과 겨루었는데(3절 하)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면서 그에게 복을 간구했습니다(4절, 창 32:25-26).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창 32:28). 야곱이 그렇게 씨름한 이유는 그를 죽이려는 에서를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에서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러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모든 이방 신상을 버렸습니다(창 35:2). 야곱이 그렇게 벧엘로 올라간 것은 그의 딸 디나 사건으로 온 족속이 멸절당할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나아갔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4절 하). 

    호세아는 야곱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합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모든 군사적 위협에서 능히 구원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만났을 때 에서의 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야곱의 딸 디나의 사건으로 모든 가나안 사람들이 동맹하여 야곱을 칠 수 있었는데 가나안 사람들을 두렵게 하셔서 그들의 칼에서 구원하신 하나님, 그러한 하나님,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이 말씀은 여호와, 즉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벧엘에서 야곱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창 28: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야곱을 지켜주셨습니다. "여호와"는 이렇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생애를 생각할 때 이스라엘이 행할 일은 야곱처럼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입니다(6절).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고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줄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소망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즉 인애와 정의(חֶ֤סֶד וּמִשְׁפָּט֙)를 지키는 일(שְׁמֹ֔ר)을 계속해야 합니다. 인애와 정의를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실생활에서 잘 적용해서 지킨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을 소망하고(קָוָה) 있으면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셨듯이 그렇게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호하신 이유는 그가 본성적으로 깨끗하고 신실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야곱"입니다. 즉 속이는 자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처럼 속이는 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이는 자를 하나님께서는 만나주시고 끝내 그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 약속을 기억하고 벧엘로 돌이켰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이스라엘이 행해야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약속을 기억하고 야곱처럼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우상을 버리고 돌이키는 일 안에는 인애와 정의를 지키는 일이 포함됩니다. 뉘우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상태로 돌이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여전히 거짓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4절에 보면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야곱에 대한 이 기록은 바로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당시 곤란을 당하는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기록인 것입니다. 야곱을 잘 보고 돌이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7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7절과 8절은 에브라임이 야곱과 같다고 합니다. 에브라임은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 상인이라고 합니다. 상인은 그렇게 해서 부를 쌓습니다. 에브라임은 "나는 실로 부자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낼 자 없으리라" 라고 합니다. 자기 힘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그것이 죄라고 할 만한 불의(עָוֺ֥ן אֲשֶׁר־חֵֽטְא) 없이 이룬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상인"이라는 말은 원어로 케나안(כְּנַ֗עַן)입니다. 즉 가나안 사람을 의미하는데 가나안 사람은 상업술이 좋아서 잘 속여 매매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박윤선, 호세아서 주석, 80쪽). 그러므로 이것은 에브라임이 가나안 땅에 살면서 본래 가지고 있었던 속이는 자의 속성(야곱)에다가 가나안 사람의 속이는 특징이 결합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당시 문화에 동화되어서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8절). 

    그러나 거짓 저울(מֹאזְנֵ֥י מִרְמָ֖ה)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참 11:1, 20:23). 하나님께서는 두 종류의 저울추나 두 종류의 되를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속이는 저울을 두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와 되를 두라고 하셨습니다(신 25:13-15). 속이는 저울이나 되를 여호와께서는 가증히 여기신다고 하셨습니다(신 25:16). 인애와 정의를 지키면(6절) 7-8절처럼 말할 수 없습니다. 

    7-8절은 여로보암 2세 때의 경제적 부강을 그 배경으로 합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때 경제적으로 부강했고 그 결과 교만해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경제적 부강은 속임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자랑할 것이 못 되었던 것입니다.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9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10   내가 여러 선지자에게 말하였고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선지자들을 통하여 비유를 베풀었노라
    11   길르앗은 불의한 것이냐 과연 그러하다 그들은 거짓되도다 길갈에서는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리며 그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도다

    에브라임은 자기가 부자인 것을 자기의 수고에 돌렸습니다(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너희가 지금 교만할 수 있느냐"라는 뜻입니다. 너희는 애굽 땅에서 종살이 하던 자들이 아니냐, 내가 너희를 건져낸 것이 아니냐, 이런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명절날은 초막절을 가리킵니다. 초막절은 그들이 광야에 있을 때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들이 다시 광야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심판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셔서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이상을 많이 보였으며", "비유를 베풀었노라"라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 주전 8세기에는 호세아, 미가, 이사야 등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택하신 백성의 죄악을 계속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길르앗"과 "길갈"에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길르앗"은 요단 동쪽에 있는데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가 거주하던 지역(민 32:33)입니다. 그들은 거짓되다고 하십니다. 길르앗 지방은 주전 9세기에 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서 점령되었습니다(왕하 10:32-33). 그러므로 "그들은 거짓되도다"라고 한 것은 그 땅이 헛된 것으로 돌아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길르앗으로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헛된 것으로 돌아갈 것에 대해서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길갈"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변해버렸습니다(4:15, 9:15). 무리가 수송아지로 제사를 드린다고 하는 것은 우상에게 제물을 드린다는 것이고 제단은 밭이랑에 쌓인 돌무더기 같다고 한 것은 그만큼 우상을 위한 제단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갈은 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의 장소였는데(수 5:2-9) 이스라엘은 그곳을 배교와 부패의 장소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9-11절 말씀은 7-8절에서 말한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나는 부자(8절)라고 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위태한 것인지를 알려줍니다. 

    야곱이 아람의 들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12   야곱이 아람의 들로 도망하였으며 이스라엘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쳤고
    13   여호와께서는 한 선지자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고 이스라엘이 한 선지자로 보호 받았거늘
    14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으니 그의 주께서 그의 피로 그의 위에 머물러 있게 하시며 그의 수치를 그에게 돌리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다시 야곱 이야기를 하십니다. 야곱이 아람 들로 도망한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가 아내를 얻기 위하여 사람을 섬긴 일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아내를 얻기 위하여 양을 친 일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12절). 여기서 사람을 섬겼다는 것은 그가 밤낮 고생하면서 라반의 양을 돌보는 것에 주력했다는 뜻입니다. 그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그는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사람 섬기기에 바빴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지금 이스라엘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라는 것입니다. 지금 경제적인 부함을 추구하면서 사람 섬기기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뜻입니다. 나라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제도와 위용이 점점 세워지고 사상체계가 바르게 세워지는 일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일도 말씀하십니다(13절). 애굽을 다시 말씀하시는 이유는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소임을 감당하지 못하는 처지였기 때문입니다. 거기에서 그들은 쇠풀무질을 당했습니다. 심각한 노동으로 하나님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 모세를 사용하셔서 인도해 내시고 보호하셨습니다(13절).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 제사장 나라로 잘 세워지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오직 경제적인 이득을 따라서 행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에브라임이 격노하게 함이 극심하였습니다(14절). 그들은 포악을 행하여 피를 흘렸습니다(4:1-2). 경제적인 이득을 바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정의와 인애는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 피가 그의 위에 머물러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수치가 그에게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다시 속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인애, 사람을 향한 사랑이 전혀 없이 경제적인 이득만을 우선으로 여기면서 많은 사람을 억울하게 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말씀하시면서 그들에게 교훈을 주십니다.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또한 애굽에서 종노릇 할 때를 상기시키시면서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면 마땅히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가 인애와 정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 뜻을 깨달아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제사장 나라의 면모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시 비참한 지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행적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야곱도 위기의 상황에 봉착해서야 하나님을 강하게 찾고 의지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일에 주의해야 합니다. 자꾸 되돌아가면 안 됩니다. 어느 정도 잘 살게 되었다면 안정이 되었다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돈, 돈, 하고 앉아 있으면 다시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게 됩니다. 교회도 이런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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